Archive for April, 2008

6월 이사

디씨에 와서 처음으로 렌트했던 지금 집.. 엄청 착한 가격에 렌트($1550)를 들어와, 좋은 이웃도 만나고, 좋은 집주인 덕에 1년을 잘 지냈던것 같다.

우리가 첨에 넘 싸게 들어와서, 집세를 올려 주어야 되었고, 또, 자우씨가 늦게 퇴근하게 되면, 여기까지 오는 버스가 넘 일찍 끝나서 (7:30pm이 막차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내가 차를 타고 픽업을 나갔는데, 이제 둘째가 태어나면 그게 힘들것 같다. ) ,  깊이 생각한 후에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apartment

< inside the apartment (fair oaks at pender creek)>

여기 저기 발품을 많이 팔아서, 자우씨가 늦게 오더라고 버스가 다니는  곳에 위치한 지은지 15년(-.-;;) 이 넘어가는 아파트 인데,,, 현재 시세 보다 $200이나 싸게 아파트를 구했다. 정말 하나님의 도움인거 같다. 다들 가격을 얘기하면, 진짜 싸게 구했다고 한다. ^^  원래는 (방 두칸에 화장실 두개-미국에서는 아이가 있으면 법적으로 방 두칸짜리에 살아야 한다. 쩝) $1700 정도 하는 아파트였는데, 스페셜 오퍼로 $1485에 계약을 했으니 (사실, 일년 후에 재계약을 할때 좀 걱정되긴 하지만도,,, )….. 좀 오래되고 낡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을거 같다. 예전에 플로리다에 살던 아파트는 30년 된거 였다. 물론 렌트비가 $600 이었지만,, 거기서 적응을 한 우리로서는 15년 정도면, ok,,!! 

이사는 6월 21 이후에 할 예정이고, 여기 계약이 6월 말 까지니까 천천히 조금씩 짐을 나를 예정이다. 큰 가구가 침대2개밖에 없어서, 그것만 트럭을 빌려 옮기고, 나머지는 그냥 우리 차로 조금씩 옮길까 한다. 이사 가서 필요한 건 소파와 식탁인데,,, IKEA에 가서 저렴한 걸로 장만하던지 아님 중고를 사면  4백불 정도면  모두 해결 할수 있을거 같다. 짐만 많으면 이사다닐때 힘드니, 나머지는 그냥 있는 걸로 버텨볼까 한다. 

세계적으로 불황이라고들 하는데, 여기도 예외가 아닌듯,,, 미국와서 몸으로 처음 으로 느끼는 불황이다. 망하는 가게들이 줄줄이 늘고, 기름값이 갤런당 $2불 한던것이 지금은 $4불이다. 아시안 가게에는 쌀값이 폭등한다고, 쌀 사재기를 한다고, 쌀이 바닥이 났다. 상점에는 세일이라고 하지만, 사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우리집도 더욱 허리띠를 졸라 매야 겠다. 그럼 의미에서 이사를 결정한건 잘 한거 같다. 지금 집보다는 렌트비도, 그리고 전기 수도 요금도 적게 나올테니….

주위에 이웃들을 사귀면서 보니, 우리 또래인데, 벌써 집장만을 한 집들이 많다. 이렇게 이사를 준비하면서 보니, 좀 부럽기도 하구,,, 근데 아직 우리가 어디서 살게 될지 모르니, 아직 우리에겐 집장만은 무리다. 그래도 언젠가 우리가 집장만을 하게 되면,, 작은 집에 텃밭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과연 우리가 어느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될까? 궁금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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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재의 두번째 생일

 

bonjae_2_birthdayJPG

본재는 우리 서방님과 동서의 아들이자, 보니의 사촌이다. 지난 월요일에 두번째 생일을 맞이 했다. 못본 동안 의젓이 커 주었다. 넘 사랑스러운 본재.

같이 하지 못해 아쉬운 또 다른 순간이다….

토마스를 넘 좋아하는 본재, 서방님,그리고 동서, 그 옆에는 기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쫄랑이도 있다. 머리 스탈을 달리해서 더욱 귀여운 서영 아가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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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째) 입덧이 거의 끝나가고

둘째 입덧이 거의 끝나가는 거 같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어제 병원에 기형아 검사를 위한 피검사를 하러 갔다가, 의사가 심장 박동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동안 입덧이 잠잠해서, 아가가 잘 지내고 있는지 좀 궁금했다. 입덧 할때는 그나마 입덧이 아가가 건강하다라는 싸인이라는 생각으로 살다가, 입덧을 덜하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힘차게 잘 뛰고 있었다. 그동안 말(?)없이 뱃속에서 잘 크고 있었나 보다. 의사가 16-20주 정도 되면 할 정밀 초음파를 예약하라고 했다. 이때 보통 유전적인 기형을 알아 낸다고 한다. 물론 성별과 함께,,,첨에는 아들이었음 했는데,, 지금은 그냥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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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생활

아,,,,, 오늘 새벽  그룹미팅이 있었는데,,, 그만 새까맣게 까먹고 말았다. 이탈리아에서 전화가 왔었는데도,,, 그냥 모르고 자버렸다. 앜,,, 나의 기억력이 드디어 일이 냈다. 당장  다이어리를 하나 사던지.. 뭔가 내 기억력을 대신할 무언가가 있어야 겠다. 그 사실을 정오가 되어서야 알게 된 나는,,, 읔,,, 하루 종일 이 씁씁함,,,, 읍쓰…  에궁,,,, 임신해서 그렇다 라고 변명이라도 스스로에게 해 보지만도,,,,

“에이 그럴수도 있지” 그러고선 스스로에게 위로도 해 보구, 이것저것 집안 밀려놓은 일도 해 보지만도,,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아마 내가 너무 나태해 졌었나 보다,,, 프로 의식이 부족해진 나

음,, 낼 로마에 전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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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만한 글 하나

(* 이 글은 양승훈 교수님이 쓰신 글을 퍼 온 글입니다)

여자들의 성취
처음 결혼했을 때 나는 아내가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일인지를 잘 몰랐다. 더구나 사랑 받는 아내와 훌륭한 엄마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전혀 몰랐다. 나는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 저절로 아내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일년 정도 지나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로 알았다. 세상 인구의 절반인 여자들은 때가 되면 누구나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이니 뭐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세월이 가면 저절로 되는 아내와 엄마 이상이 되기를 기대했다. 남들에게 내 보일만한 사회적인 성취를 하기를 기대했다. 박사학위도 하고 좋은 책도 저술하여 사회적인 명사가 되기를 바랬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온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에게 밥이나 해주는 평범한 아내가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아내의 사회적 성취로 인해 내가 유명하게 되려는 흑심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직장을 가짐으로 두 배의 소득을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차마 그런 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노골적으로 당신이 아내와 엄마만 되는 것은 자원 낭비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썩히는 것이라고 영적인 듯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내 아내가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적당한 기회에 내가 해외에 나가 있을 때 학위를 할 준비를 하라고 채근했다.
아내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토플도 준비했고 GRE도 치렀다.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중에도 아내는 공부를 했다. 그래서 미국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도 받았고, 가서 공부도 했다. 물론 내가 미국에 머무른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는 일단 석사를 마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여자가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얘기를 했다. 하지만 눈과 귀가 어두웠던 내게는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어떤 계기가 있었다. 아마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건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두 번째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고, 아내는 두 번째 석사 학위 과정에 등록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 때는 어느 새 아이들도 셋이 되었다. 그런데 몇 번인가 주말에 아내가 바깥에 나가고 대신 내가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며, 밥을 준비해 놓을 테니 때가 되면 밥도 챙겨주라고 자세히 일러주었다. 물론 나는 그러하겠노라고 했다. 오랜만에 나도 집에서 휴가를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가 나가자마자 일들이 줄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어진 것을 안 아이들은 내게 몰려와 끊임없이 이것저것을 요구했다. 맏이의 끝없는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면, 둘째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아직 책을 다 읽어주지도 않았는데 셋째는 쉬를 했다. 기저귀를 갈아주면 배고프다고 하고, 밥을 먹여주면 놀이터에 나가자고 하고 … 이렇게 해서 한 반나절 지나니 “깨꼬닥” 할 것 같았다. 이건 휴가가 아니라 중노동이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날마다 아이들과 집에서 지내는 것은 박사 학위 공부를 하는 것보다,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이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여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끝없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가 다른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아내의 가치와 노고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 가치는 아내가 전문직을 갖는 것이나 유명인사가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우리 부부 관계의 일대 전기가 되었다. 나는 다시는 아내에게 “쓸 데 없는” 것들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만도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아내가 나가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원고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도 하지만 아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나 옆에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고, 남편에게 사랑 받고 칭찬 받는 훌륭한 내조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중요한 강연 요청이 있어도 가정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다. 지금 아내는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세계관 대학원(VIEW)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여러 학생 가족들을 돕는 일을 기쁨으로 하고 있다. 학생 사모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하고, 새로운 가족이 오면 정착에 필요한 이런 저런 것들을 도와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길을 가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
가정에서 아내의 수고와 그 가치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 후 나는 비로소 아내에 대해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의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되었다.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집안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안 청소는 말 할 것도 없고 틈나는 대로 설거지를 도우면서도 으스대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많이 도와줘도 아내의 수고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못 미치는 부분을 아내에 대한 격려로 보충하기로 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다고 … 돈 안 드는 립 서비스지만 아내는 똑같은 칭찬을 수 없이 들어도 늘 처음 듣는 것처럼 기뻐했다. 이처럼 아내가 기뻐하니, 나도 기쁘고, 부부가 기뻐하니 아이들도 행복한 것이다. 남자가 아무리 훌륭한 책을 쓰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도 아내가 집에서 끝없이 반복하는 설거지나 청소,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보다 더 대단한 것이 아니다.
12년 전에 경험한 개인적인 “코페르니쿠스적 회심”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오늘 우리 사회와 시대를 생각해 본다. 아직도 주변에는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진출하지 않으려면 왜 그 비싼 돈을 드려서 고등교육을 받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훌륭한 아내와 엄마가 되는 데는 아무런 교육도,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과연 그럴까? 이런 사람들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것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을 양육하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들이다.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것은 대학교수보다 더 전문적인 일이며, 훌륭한 아내가 되는 것은 박사학위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사회가 돌아가
것을 기계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남자들은 기계라고 할 수 있고 여자들은 기계의 윤활유와 같다. 여자들이 있어야 기계들은 소리 없이 돌아갈 수 있다. 윤활유만으로 기계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윤활유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차라리 돌아가지 않는 편이 낫다. 여자들은 직장이나 교회 등에서 남자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면서 파워 게임을 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쓸데없는 긴장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선을 제하려는 어리석은 남자들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들은 툭하면 서열을 만들어 자기가 보스가 되려 하고, 때로는 이를 위해 피 흘리기까지 투쟁하는 남자들을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데…
남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여자들의 하는 일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빨리 접을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남자가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한 것을 여자가 가정에서 아이 낳고 기르며,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수고보다 더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런 남자는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우둔한 자요, 가정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숙맥이다. 비록 자신이 일을 함으로 가족 전체가 생계를 이어갈지라도 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은 물질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남자의 바깥일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
사실 남자들의 사회적, 직업적 성취라는 것도 가만히 살펴보면 별 것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서 가정이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벌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 같아서 남자들이 큰 소리를 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여자들의 역할이다. 남자들이 하는 일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들이 없다면 좀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이들을 낳지도, 기르지도 않고 가정을 팽개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대학 공부에 비유한다면 남자들의 하는 일은 자유선택이지만, 여자들의 하는 일은 전공필수다. 여자들의 하는 일들을 칭찬해주고 귀히 여겨줄 때 여자들은 더 이상 외적인, 사회적인 성취로부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것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살만한 사회가 될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 훌륭한 엄마와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은 어떤 직업적인 성취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엄마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내라는 자리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유능한 가정부라도 아내와 엄마로서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은 여자들이 깨달아야 할 사실이기도 하지만 먼저 남자들이 이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남자들이 이 사실을 뼈 속 깊이 깨닫고 여자들을 격려할 때 이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여자들이 가정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는 것을 자신이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한 것과 조금도 열등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 돌아올 때 아내가 수고했다고 인사하기 전에 남자들이 먼저 아내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추가하자면 나는 근래 우리나라의 이혼율의 증가도 상당 부분 여자들의 사회적 성취 드라이브와 관련이 깊다고 믿는다. 결국 가정에서의 성취보다 사회적 성취를 중요시하는 시대 조류에 발맞추어 여자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빈도가 많아지게 되고, 그럴수록 남녀간의 사건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도 증가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다른 남자나 여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그 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오늘날 이혼의 압도적인 다수가 배우자 부정에 기인하고 있다는 통계는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여자들, 특히 결혼한 여자들에게 남자들과 비슷한 사회적, 외적 성취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 타락한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여자들의 책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남자들의 잘못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사회적 성취만을 진정한 성취로 보고, 그런 여자들을 유능한 여자로 평가하는 한 여자들은 끊임없이 가정 바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아내가 전업주부로서 집에 있는 것을 “썩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는 한 여자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이다. 결국 남자들이 여자들의 진정한 성취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때 가정이 튼튼해지고 사회가 건강해 질 수 있다. 여자들이 외적, 사회적 성취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고 가정의 가치를 깨달을 때 가정의 행복을 회복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일부 여권 운동가들에게 몰매를 맞을 얘기란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구석기 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한국 여자들에게 철 족쇄를 채운 가부장적 유산의 전형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혹 내가 쥐약 먹었다고 매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정말 쥐약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먹은 약은 유교적 가부장 전통의 쥐약이나 남성 우월주의의 쥐약이 아니라 신약과 구약이라고 할 수 있다. 잠언 기자는 가정을 잘 돌보는 현숙한 여인을 진주보다 더 귀하다고 하고, 자녀들을 잘 양육한 엄마들을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 여자라고 칭찬한다(잠31:10-31). 사도 바울은 젊은 여인들(과부들)에게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 것을 당부한다(딤전5:14).
끝으로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성들의 전문직 진출을 비판하기 위함도 아니고, 사회적인 여러 분야에서 여자들의 능력이 남자들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기 위함은 더욱 아니다. 가정 형편상 도리 없이 직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이 글은 한편으로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을 기르면서 가정을 세우는 데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기로 작정한 전업주부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가 집에서 하는 일들을 하찮게 생각하며 자신의 외적이고 직업적인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남자들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스물 두 번째 맞는 결혼 기념일에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 2002.12.19. written by 양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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