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볼 만한 글 하나
(* 이 글은 양승훈 교수님이 쓰신 글을 퍼 온 글입니다)
여자들의 성취
처음 결혼했을 때 나는 아내가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일인지를 잘 몰랐다. 더구나 사랑 받는 아내와 훌륭한 엄마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전혀 몰랐다. 나는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 저절로 아내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일년 정도 지나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로 알았다. 세상 인구의 절반인 여자들은 때가 되면 누구나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이니 뭐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세월이 가면 저절로 되는 아내와 엄마 이상이 되기를 기대했다. 남들에게 내 보일만한 사회적인 성취를 하기를 기대했다. 박사학위도 하고 좋은 책도 저술하여 사회적인 명사가 되기를 바랬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온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남편에게 밥이나 해주는 평범한 아내가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아내의 사회적 성취로 인해 내가 유명하게 되려는 흑심이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직장을 가짐으로 두 배의 소득을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차마 그런 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노골적으로 당신이 아내와 엄마만 되는 것은 자원 낭비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썩히는 것이라고 영적인 듯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내 아내가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적당한 기회에 내가 해외에 나가 있을 때 학위를 할 준비를 하라고 채근했다.
아내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토플도 준비했고 GRE도 치렀다.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중에도 아내는 공부를 했다. 그래서 미국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도 받았고, 가서 공부도 했다. 물론 내가 미국에 머무른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는 일단 석사를 마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여자가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얘기를 했다. 하지만 눈과 귀가 어두웠던 내게는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어떤 계기가 있었다. 아마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건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두 번째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고, 아내는 두 번째 석사 학위 과정에 등록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 때는 어느 새 아이들도 셋이 되었다. 그런데 몇 번인가 주말에 아내가 바깥에 나가고 대신 내가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며, 밥을 준비해 놓을 테니 때가 되면 밥도 챙겨주라고 자세히 일러주었다. 물론 나는 그러하겠노라고 했다. 오랜만에 나도 집에서 휴가를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가 나가자마자 일들이 줄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없어진 것을 안 아이들은 내게 몰려와 끊임없이 이것저것을 요구했다. 맏이의 끝없는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면, 둘째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아직 책을 다 읽어주지도 않았는데 셋째는 쉬를 했다. 기저귀를 갈아주면 배고프다고 하고, 밥을 먹여주면 놀이터에 나가자고 하고 ... 이렇게 해서 한 반나절 지나니 “깨꼬닥” 할 것 같았다. 이건 휴가가 아니라 중노동이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날마다 아이들과 집에서 지내는 것은 박사 학위 공부를 하는 것보다,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이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여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끝없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가 다른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아내의 가치와 노고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 가치는 아내가 전문직을 갖는 것이나 유명인사가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사건은 우리 부부 관계의 일대 전기가 되었다. 나는 다시는 아내에게 "쓸 데 없는" 것들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만도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아내가 나가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원고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도 하지만 아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나 옆에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고, 남편에게 사랑 받고 칭찬 받는 훌륭한 내조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중요한 강연 요청이 있어도 가정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다. 지금 아내는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세계관 대학원(VIEW)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여러 학생 가족들을 돕는 일을 기쁨으로 하고 있다. 학생 사모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하고, 새로운 가족이 오면 정착에 필요한 이런 저런 것들을 도와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길을 가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
가정에서 아내의 수고와 그 가치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 후 나는 비로소 아내에 대해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의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되었다.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집안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안 청소는 말 할 것도 없고 틈나는 대로 설거지를 도우면서도 으스대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많이 도와줘도 아내의 수고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못 미치는 부분을 아내에 대한 격려로 보충하기로 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다고 ... 돈 안 드는 립 서비스지만 아내는 똑같은 칭찬을 수 없이 들어도 늘 처음 듣는 것처럼 기뻐했다. 이처럼 아내가 기뻐하니, 나도 기쁘고, 부부가 기뻐하니 아이들도 행복한 것이다. 남자가 아무리 훌륭한 책을 쓰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도 아내가 집에서 끝없이 반복하는 설거지나 청소,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보다 더 대단한 것이 아니다.
12년 전에 경험한 개인적인 "코페르니쿠스적 회심"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오늘 우리 사회와 시대를 생각해 본다. 아직도 주변에는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진출하지 않으려면 왜 그 비싼 돈을 드려서 고등교육을 받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훌륭한 아내와 엄마가 되는 데는 아무런 교육도,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과연 그럴까? 이런 사람들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것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을 양육하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들이다.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것은 대학교수보다 더 전문적인 일이며, 훌륭한 아내가 되는 것은 박사학위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사회가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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